재미로 일하는 아저씨  
오늘은 원내에 차를 가지고 들어오지 못하는 날이라 전에 살던 아파트에 주차를 시키고 예전처럼 영안실 쪽 문을 통해 걸어 들어왔다.
연구실로 오는 길은 가파른 오르막이 80도 정도로 꺾여 있어 꼭대기 부근에 주차한 차량이 있으면 사고의 위험이 커지는 지점이 있다. 그 길가에 어떤 사람이 쭈그리고 앉아있길레  뭣하나 하고 봤더니 이 아저씨가 길가 주차를 막기 위해 설치해 둔 구조물에 페인트칠을 하고 있었다. 걸어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는 길가에, 그것도 단순한 목적으로 길바닥에 깔아둔 구조물을 누가 뭣때문에 저렇게 열심히 페인트칠을 하나 하고 봤더니 몇년 전 부터 낯익은 그 유쾌한 아저씨였다.

이 아저씨 말하기를 "이게 칠이 벗겨져서 보기가 싫으니 칠을 좀 했으면 좋겠는데 달리 할 사람이 없으니 내가 해야지요." 란다. 우리가 다 같이 사는 곳인데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깨끗하고 보기좋으면 좋지 않느냐는 것이다. 사실 이 아저씨는 의료원 직원도 아니다. 주차 관리는 용역회사의 일이고 이 아저씨도 용역회사 직원으로 차단기가 있는 박스에서 주차 티켓을 관리하는 아저씨이다. 몇년 동안 드나들면서 보아 왔지만 이 아저씨는 항상 유쾌한 얼굴로 즐겁고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한다. 오늘 아침에도 신나게 설명을 하는데, 이런 페인트칠을 하는데도 사람을 구해서 일을 시키면 일당을 10만원도 넘게 주어야한단다. 하지만 자기가 하면 재료(페인트와 신나)값 이만원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 일당을 받으셔야지요." 라고 했더니 "아, 내 집 일인데 무슨 돈을 받아요." 라고 한다. 소속이 어디이든 월급을 누가 주든 그런 것은 따지지 않겠다는 말이다. 이 아저씨에게는 그저 내가 일하는 곳이 바로 '내 집'인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재미없는 일을 하면 지겨워서 못해요, 하지만 이 일은 아주 재미있어요." 란다. 아마 드나드는 차량이 뜸한 시간이라 박스 일은 동료 한 사람으로 충분하니까 여기 와서 이 페인트칠을 하나보다.

이 아저씨가 자신의 일터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이 일보다 차단기 박스 주변에서 더 잘 볼 수 있다. 이른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우리 의료원의 출입구 세곳에 있는 차단기 박스 주변은 항상 형형색색의 꽃으로 아름답게 치장되어 있다. 그 중 특히 영안실쪽 출입문은 이 아저씨가 주로 근무하는 곳인듯 박스 앞뒤로 정성들여 가꾼 화분이 줄지어 놓여 있다. 철따라 아름다운 꼿들이 이곳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준다. 나도 길건너 아파트에 살 때 줄곳 걸어서 출퇴근을 했던 터라 이 아저씨의 덕을 많이 입었다. 아침 저녁으로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내리면서 항상 싱싱하게 피어 있는 꽃들을 감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가문 날이 계속되어도 이 아저씨가 가꾸는 화분은 늘 촉촉히 젖어 있다. 이 아저씨가 꽃을 가꾸는 방법 중에 특이한 것이 있다. 그것은 병원에서 쓰고 남은 수액을 모아서 물로 적당히 희석한 다음 그것을 화분에 뿌려 주는 것이다. 병원에서 나오는 수액에는 단순히 소금과 포도당만 든 것도 있지만 칼륨과 마그네슘 그리고 아미노산이 담뿍 들어 있는 것도 있다. 이런 전해질들과 영양물질이 많이 포함된 물을 주어서 꽃들이 그렇게 크고 싱싱한가? 아니면 그 정성 때문에 그런가?



하여간 내 일터를 아름답게 꾸미고 가꾸는 마음은 정말 아름다운 마음이다. 나의 작은 수고로 불필요한 지출을 덜 수 있다는 마음은 어찌 보면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지만 요즘사람 답지 않은 청정한 마음이다. 분명히 환갑이 넘은 나이인데도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보다 더 풍요한 마음을 지닌 이 아저씨가 할아버지가 아닌 이유는 몸으로 꽃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소년'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광윤 교수 (영남대) http://youny.yu.ac.kr/